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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은지, 어떤 걸 보여야 하는지 늘 생각을 하게 된다. 생활인으로서 매 시간마다 다른 일정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보내야 하는 다양하고 들쭉날쭉인 이 모든 것들을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붙잡아 둬야 할 지, 무엇을 붙잡고 싶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꽤 난감한 일이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여행기간 동안에 얻은 생소한 기념품들이나 토속품들과 평범한 생활에서 발견하게 되는 평범한 물건들을 보며 얻는 쾌락. 즐겨 찾는 장소에서 느끼는 익숙한 오감의 쾌락, 익숙한 지인들에게서 느끼는 편안함. 대부분의 것들이 나의 선택에 따라 빈번히 교감하고 만족을 추구한다. 이 세상에는 바닷가의 모래알 숫자보다 더 많은 창작의 재료들이 널려져 있다는 생각들로 인해 항상 색다른 것, 의외의 발상, 자유로움을 뛰어넘는 더 큰 자유를 희망하며 쥐어 짜지만, 결국 내가 선호하는 그 무엇의 공통적인 실마리에 의해 그 노력들은 일관되게 보여지는 듯 하다. 선호한다는 것은 곧 내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고, 마음의 작용을 통해 나는 반복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늘 그렸다가 지우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늘 그렇게 된다. 습관처럼..
다음 날 봤을 때 너무 난감하고 부끄러워 감쪽같이 지워버리는 것도 있지만, 이미 성급하고 격한 마음에 두서없이 지나간 붓과 물감의 흔적들은 영락없이 캔버스 표면에 돌출되어 있다. 차분히 그렸던 고른 화면의 그림은 정말 감쪽같이 사라진다. 지난 날의 실수가 완벽히 덮어지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고민하고 노력했던 흔적이 아쉬워 일부만 덮어버리는데, 그것들은 서로 레이어드를 이루어 한 몸이 된다. 한 몸이 되어져 버린 그 흔적들은 대부분 서로 이유도 없고 개연성도 없는 이야기들의 합체이지만, 그것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존재 이유가 그제서야 연결되어 지면서 그럴듯한 한 덩어리가 되어진다. 두서없이 그려진 것들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지 확정할 수 없는 과정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연과 불연속, 요컨대 난장이 된다. 이러한 무질서한 과정 속의 선과 색, 사소한 것과 의미심장한 것, 낙서와 사실적인 이미지 그리고 첨가된 사물들이 어느덧 내 앞에 놓여진다.
비로소 그 시간의 흔적들은 마침내 무지개같이 펼쳐지는 내 생각들의 서술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그 적나라한 광경들에 문득 부끄러움을 느껴 버리고, 다음 작업에서는 하나씩 지워 나간다.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것들을 배제한 나의 본래의 순수한 모습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움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다시 생각한다. 그릴 것을 딱히 생각하지 않고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쾌락뿐 아니라 심심하고 하찮은 것들도 나를 자유롭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진다.
홀가분하고 침착한 채 뜨거워지는 어느 날.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흡수하여, 마음이, 심장의 두근거림이 이끌어 가는 환영들을 붙잡으며.
생활과 작업이라는 묵직한 두 개의 공간을 가로질러 공중에 뜬 채로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