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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침묵의 방법
임성필 작가노트
고대 인도의 경전에서는 색계(色界, rua-loka)라는 천인들이 거주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빛을 먹고 살아가며, 언어 또한 빛이라 한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상상하며, 빛을 색채로 바꾸어 그들의 시와 노래 그리고 일기를 기록해본다. 하지만 의미로써의 해독은 불가능하다. 환영이 사라진 화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림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말로하기 어려운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의 상상은 이러한 경험에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사각 색면들은 음소(音素, phoneme)를 이루며 중첩되어, 또 다른 대화의 출발점을 만들어낸다. 내가 기록한 대화는 무언가 주장되고 결론짓는 이론적 담론이 아니다. 대화란 주제도 없고, 목적도, 방향도 없다. 문득 시작하여 방향을 바꾸고, 다른 주제가 끼어들면, 전의 주제는 잊혀져 버린다. 사각의 간격이나 위치 그리고 색, 간혹 크기도, 처음 시작된 색면이 결정되고 난 후에, 그 위, 그 옆에, 아니면 조금 떨어져서, 같은 색 혹은 다른 색을 그려 넣는다. 이러한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이다. 화면에 여백을 많이 남겨 구성적인 효과를 내기도 하고 화면 전체를 채워 올 오버 색면추상의 효과를 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감상자가 그림에서 어떤 배열의 논리를 찾아내려는 것은 무익한 노력이다. 그저 소공간에서 대공간으로, 아니면 대공간에서 소공간으로 이행하며, 정해지지 않는 방향과 내용으로, 막연한 상상과 상념으로 이끌어가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언어 이전의 시대에는 자연의 사물들에게 아무런 이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한 그루에 나무를 보며 온 우주를 상상 할 수 있었다. 저 나무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 자리에 있는지에 대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며 침묵하고 있는 나무의 무심함을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 나무 같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영원히 침묵하는 그런 그림을.